원주 운곡 원천석 묘역에서 만난 청렴한 산중의 고요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산을 감싸던 오후, 원주 행구동의 운곡 원천석 묘역을 찾았습니다. 길게 이어진 소나무숲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작은 언덕 위로 묘역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봉분 하나와 석물 몇 점,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담백했습니다. 묘역 앞에는 ‘運谷元天錫先生墓’라 새겨진 비석이 서 있었고, 묘비의 글씨는 세월에 닳아 은은한 음영만 남아 있었습니다. 원천석 선생이 세속의 벼슬을 버리고 은거했던 그 기품이 이곳의 정숙한 공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는 듯했습니다. 발걸음을 멈추자, 바람과 새소리만이 조용히 산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1. 행구동 산길을 따라가는 길
운곡 원천석 묘역은 원주시 중심에서 차량으로 약 15분 거리, 행구동 산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운곡원천석묘역’ 표지판이 보이고, 그 옆에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숲길을 따라 약 300미터 정도 오르면 묘역이 나타납니다. 길은 완만하며, 중간에 안내석이 설치되어 있어 방향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숲길 옆에는 오래된 돌계단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섞여 있습니다. 가을철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발소리가 부드럽게 묻히고, 봄에는 산벚꽃이 흐드러집니다.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길을 오르는 동안 마음이 자연스레 고요해졌습니다.
원주 운곡 원천석 묘역 및 창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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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묘역의 구성과 석물 배치
묘역은 단정한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습니다. 좌우에는 망주석이 한 쌍으로 서 있고, 묘역 입구에는 비석과 함께 석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물의 형태는 간결하지만 균형감이 뛰어나고, 조각선이 부드럽습니다. 특히 묘비의 글씨체는 힘이 있으면서도 절제되어 있어, 선생의 학문적 품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봉분 뒤편에는 낮은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바람을 막아주며, 묘역 전체가 안정된 비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돌의 질감이 세월의 풍화를 머금고 있었고, 햇살이 닿을 때마다 은은한 회색빛이 도드라졌습니다. 인공적인 꾸밈이 없고, 오히려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였습니다.
3. 운곡 원천석의 생애와 학문적 유산
원천석(元天錫, 1330~?) 선생은 고려 말의 대학자로, 공민왕 때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세속의 혼란을 피해 벼슬을 사양하고 원주 운곡리로 내려와 은거했습니다. 그는 청렴한 인품과 높은 학문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조선 태조가 스승으로 모셨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묘역 안내문에는 “그의 학문은 도학과 시문에 두루 능했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묘역 인근의 ‘운곡서원’은 후대에 세워져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사상사의 전환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묘 앞에 서면 그의 청렴한 정신이 여전히 느껴졌습니다.
4. 주변 풍경과 묘역의 분위기
묘역 주위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닥에는 잔잔한 이끼가 깔려 있었습니다. 비가 그친 다음 날이라 흙냄새가 진하게 풍겼고, 바람이 불면 솔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묘역 앞에는 작은 돌담이 둘러져 있어 공간을 정갈하게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봉분 위에는 들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고, 햇빛이 잔잔히 스며들며 묘역 전체에 따뜻한 빛을 덮었습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낙엽이나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묘역 주변에는 안내문과 함께 간이 쉼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산속의 정적과 선생의 학덕이 어우러져, 한 폭의 묵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5. 인근 명소와 함께 둘러보기
묘역을 둘러본 후에는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운곡서원’을 방문했습니다.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단아한 목조 건물과 연못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원주행구동 한지테마파크’에 들러 지역의 전통 공예문화를 체험했습니다. 점심에는 인근 ‘행구막국수집’에서 따뜻한 육수와 함께 메밀막국수를 맛보며 잠시 쉬었습니다. 묘역과 서원, 그리고 한지문화가 어우러진 하루 일정은 조용하면서도 의미 있는 역사 탐방이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학문과 예술이 만나는 원주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6. 방문 시 유의할 점
운곡 원천석 묘역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숲길 구간이 비포장이므로 운동화나 등산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길이 미끄러울 수 있고, 여름에는 벌레가 많으니 긴 옷차림이 좋습니다. 묘역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봉분이나 석물에 손을 대지 않아야 합니다. 봄과 가을은 날씨가 온화해 방문하기 가장 좋고, 겨울에는 눈이 덮인 풍경이 또 다른 고요함을 선사합니다. 오전 시간대에는 햇살이 비스듬히 묘비를 비춰 글씨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조용히 걸으며 묘역의 정취를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관람 방법이었습니다.
마무리
운곡 원천석 묘역은 화려한 장식 없이도 깊은 기품이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절제된 조화 속에 자리하고 있었고, 선생의 청렴한 삶이 그대로 반영된 듯했습니다. 바람이 봉분을 스치며 만들어내는 잔잔한 소리가 마치 오래된 시 한 구절처럼 들렸습니다.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학자의 정신이 이 산자락에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봄 안개가 내려앉은 새벽에 다시 찾아, 그 고요함 속에서 선생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운곡 원천석 묘역은 시간과 품격이 머무는 원주의 가장 깊은 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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